대장암은 초기에 별다른 증상이 없거나, 있더라도 변비, 소화 불량 같은 흔한 질환으로 착각하기 쉽다.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야 비로소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마저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대장암 증상인 '혈변'과는 달라 대장암을 의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대장의 어느 부위에 암이 생겼는가에 따라 증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성인 대장은 길이가 약 1.5m에 이르며 각 구간마다 기능도 다르고, 통과하는 대변의 상태나 장벽 두께 역시 차이가 있다. 이처럼 구간마다 특성이 뚜렷한 장기이다 보니, 암이 생긴 위치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대장 항문외과 백정흠 교수(가천대 길병원), 소화기내과 이보경 교수(삼성창원병원)와 함께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대장암의 부위별 신호를 자세히 짚어본다.

유전부터 식습관까지…원인도 다양한 대장암
대장암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이보경 교수는 대장암의 위험 요인을 크게 '조절 가능한 요인'과 '조절이 어려운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절 가능한 요인에는 △식습관 △흡연 △음주 △운동 부족 등이 있고, 조절이 어려운 요인에는 유전적 소인이나 염증성 장 질환 같은 만성질환이 포함된다.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같은 붉은 고기나 소시지, 햄, 베이컨 같은 가공육을 지속적으로 다량 섭취할 경우 대장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 지방 함량이 높은 이런 음식을 섭취하고 나면 담즙산 대사가 변화되고 염증과 세포 변이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특히, 고온에서 붉은 고기나 가공육을 조리하면 '이종 아민'이나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pahs)' 같은 발암성 화합물이 생성된다"며 대장암과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흡연은 폐암뿐 아니라 대장암 발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 교수는 "연구에 따르면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대장암 발생 위험이 최대 40%까지 높다고 알려져 있으며, 대장암의 시작점이 되는 경우가 많은 '선종성 용종' 형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 흡연자는 대장암 진단 후 생존율도 낮은 편이다.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 같은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은 장 점막에 지속적인 염증을 유발한다. 이런 질환으로 인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변하면 암이 될 수 있다. 특히, 염증의 범위가 넓고 지속 기간이 오래될 경우 대장암 발생 위험이 더 높아진다. 제2형 당뇨병으로 인한 고인슐린혈증과 세포 성장 자극도 암 성장과 연관된다. 따라서 이러한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대장암 고위험군에 속하게 된다.

대장암의 약 5~10%는 유전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 '린치 증후군'(유전성 비폴립증 대장암)이나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 같은 유전 질환이 있는 경우 대장암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포이츠-제거스 증후군 △mutyh 관련 용종증 △가드너 증후군 △낭성섬유증 등도 대장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복부 내장지방도 대장암과 관련이 높은 요인이다. 이 교수는 "비만 남성인 경우 대장암 상대 위험도가 30% 이상 증가한다"며 "술은 남성의 경우 하루 2잔 이상, 여성은 1잔 이상 마시면 대장암 위험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왼쪽은 변비, 오른쪽은 빈혈…부위별 대장암 증상 달라
대장암은 크게 '우측 대장암'과 '좌측 대장암'으로 나눌 수 있다. 우측에 속하는 부위는 '맹장', '상행 결장', '횡행결장'이며 좌측에 속하는 부위는 '하행 결장', 's자 결장', '직장'이다. 백정흠 교수와 이보경 교수는 각 부위의 구조, 내부 공간의 넓이, 내용물의 상태 및 운동 기능에 따라 증상이 다음과 같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1. 맹장 및 상행결장(우측결장) 부위 증상
맹장이나 상행결장에 발생한 암은 초기에 뚜렷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부위는 장 내부 공간이 비교적 넓고, 내용물이 아직 액체 상태여서 암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도 장이 막히는 '장폐색' 같은 증상이 잘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행 결장은 장벽이 얇아 궤양이 생기면 쉽게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철결핍성 빈혈'이 발생하면 피부가 창백해지고 피로감, 어지럼증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더불어, 오른쪽 하복부의 불편감이나 미세한 통증도 발생할 수 있다.

2. 횡행결장(우측결장) 부위 증상
횡행결장은 복부 중앙을 가로지르며 상행결장과 하행결장 사이에 있는 부위다. 따라서 두 결장의 특성이 중간 정도로 나타날 수 있다. △복부 팽만감 △불편감 △소화 불량 증상이 생길 수 있으며, 간헐적으로 복통과 경련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암의 크기가 커지면 내부 공간이 좁아지면서 장의 움직임이 방해받아 복통이나 경련이 생길 수 있고, 장폐색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대변이 지나가는 길이 좁아지면서 가스가 차거나 더부룩한 느낌도 들 수도 있다.

3. 하행결장(좌측결장) 부위 증상
하행결장은 장벽이 두껍고 내부 공간이 좁다. 또한, 장 내부 통과 과정에서 수분이 흡수되어 상대적으로 딱딱한 변이 통과하는 부위다. 따라서 이 부위에 암이 발생하면 변비나 설사, 변이 가늘어지는 등의 배변 습관 변화가 비교적 빠르게 발생한다. 장폐색으로 인해 대변이 원활하게 통과하지 못하면 좌측 하복부에 뚜렷한 통증이 생기거나 배변 후에도 잔변이 남아 있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그 밖에 혈변, 좌측 하복부에 덩어리가 만져지는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4. s자 결장 및 직장(좌측결장) 부위 증상
s자결장은 '구불결장'이라고도 불리며, 하행결장과 마찬가지로 내부 공간이 좁아 이 부위에 암이 생기면 장폐색이 발생할 수 있다. 직장은 s자결장보다 내부 공간이 비교적 넓은데, 암으로 인해 점막에 궤양이 생기면 점액 분비가 증가해 콧물처럼 끈적한 점액질변이 배출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직장 하부에 암이 생기면 치질과 비슷한 선홍색 혈변이 나타날 수 있으며, 항문 부위의 묵직한 통증이나 배변을 참기 어려워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 하는 느낌이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부위에 따라 대표 증상이 다르긴 하지만, 변비나 설사와 같은 배변 습관의 변화, 대변에 피가 섞이는 혈변, 복부 통증, 지속적인 피로감, 원인 모를 체중 감소 등은 부위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즉, 위치에 따른 증상 차이는 일반적인 경향일 뿐, 사람마다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조용한 암' 대장암
대장암은 발생 부위가 점막에 국한되어 있는 0기부터 다른 장기로 원격 전이된 4기까지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대장암 증상은 보통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백정흠 교수는 이런 특성 때문에 대장암은 '조용한 암'이라고 표현했다.

0기~1기
암이 대장 점막이나 그 바로 아래층인 점막하층에만 있는 단계다. 증상이 거의 없어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보경 교수는 "아주 드물게 대변에 약간의 피가 섞이거나 배변 습관이 살짝 변할 수 있지만, 대부분 눈치채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기~3기
암이 대장 벽을 뚫거나 주변 림프절로 퍼질 때쯤 증상이 시작될 수 있다. 빈혈로 인한 어지러움, 피로감이 나타날 수 있고, 복통이나 설사, 변비 같은 배변 변화나 혈변 등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암이 커지면서 출혈을 유발하거나 내부 공간을 좁게 만들어 폐색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4기
암이 간이나 폐 같은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 체중 감소, 심한 피로감과 같은 전신 증상과 앞서 언급한 모든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증상이 뚜렷해지는 시점은 대장 벽에서 용종이 일정 크기(보통 2~3cm 이상) 이상으로 성장하여 장벽을 뚫고 궤양을 만드는 등 장의 기능에 실질적인 변화를 미칠 때다. 피부에 궤양이 생기면 진물이 나오고 피가 나오듯이 대장에도 궤양이 생기면 혈관이 노출이 되어 피가 난다. 이 시점은 암의 위치와 성장 속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조기에 대장암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검진, 특히 대장 내시경이 필수적이다.

정기 검진 통해 조기 발견하면 완치율 90%
대장암은 생활 습관의 개선과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예방과 조기 발견이 가능한 암 중 하나다. 백정흠 교수와 이보경 교수는 대장암 예방 방법을 크게 다섯 가지로 소개했다. 첫째는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다. 붉은 고기나 가공육은 줄이고, 채소, 과일, 통곡물처럼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이보경 교수는 "식이 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면 대변의 통과 시간이 단축되고 발암물질의 장 점막 노출 시간이 줄어들어 암 발생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식이 섬유는 장내 유익균의 활동을 촉진해 장내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염증 반응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다. 백정흠 교수는 "보통 암 환자는 체중이 빠져 마르는데, 대장암은 비만인 환자가 많다"며 "암이 진행될수록 점점 체중이 줄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부위 암 환자와는 달리 비만인 환자가 많은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하루 30분 정도 빠르게 걷기만 해도 대장암 위험을 낮출 수 있다"며 유산소 운동을 통한 대장암 예방을 권장했다.

셋째는 정기 검진을 하는 것이다. 백정흠 교수와 이보경 교수가 추천하는 대장 내시경 시작 시기는 45세, 시행 간격은 5년이다. 만약 대장암 가족력이 있다면 40세,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 같은 유전병이 있다면 청소년기부터 꾸준히 검사를 받아야 한다. 대장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이 90% 이상일 정도로 예후가 좋다.

넷째는 금연과 절주 같은 생활습관 관리다. 담배와 과음은 대장암 위험을 높이는 큰 요인 중 하나다. 백 교수는 "규칙적인 생활과 숙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은 우리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무시하지 않고 귀 기울이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변비나 설사와 같은 배변 습관의 변화, 혈변, 복통, 지속적인 피로감, 원인 없는 체중 감소 등이 발생하면 꼭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